반유대주의 논란 속 하버드 총장도 ‘사임’, 전쟁이 불러온 ‘경직된 사회’의 단면

반유대주의에 '애매한 답변' 남긴 하버드 총장, 논란의 불 지폈다
이-하 전쟁에 '파국' 치닫는 서구권, 갈라치기 '횡행'
정치적 이해관계에 왜곡되는 사상들, 경직된 사회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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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사진=하버드대학교

미국 명문 하버드대학교의 클로딘 게이 총장이 결국 사임했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된 뒤 이사회의 재신임을 받았으나 최근 논문 표절 논란이 지속되며 소송에 직면하자 전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유독 경직성이 강화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클로딘 게이 하버드 총장, 결국 사임

게이 총장은 2일(현지 시각) 입장문을 내고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됐음을 알리고자 마음은 무겁지만 하버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아 이 글을 쓴다”며 “우리 공동체가 개인이 아닌 기관에 초점을 맞춰 이 특별한 도전의 순간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제가 사임하는 것이 하버드대에 가장 이익이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증오에 맞서고 학문적 엄정성을 지키겠다는 저의 약속, 저라는 사람의 근본적인 두 가지 가치에 대한 의심을 받는 것은 고통스러웠다”면서 “인종적 적개심에 기반한 인신공격과 위협을 받는 것은 두려웠다”고 전했다. 이사회도 성명을 내고 지난 몇 달 동안 지속적이고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게이 총장의 사임을 받아들인 것은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메일과 전화 등으로 게이 총장에게 인종차별적 독설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가능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그러한 공격을 규탄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게이 총장은 지난달 5일 미 하원에서 “반유대주의 혐오 발언은 대학 행동 강령에 어긋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하버드의 가치와 상충되지만 우리는 혐오스러운 견해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한다”고 답하는 등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점차 예민해지면서 게이 총장의 이 같은 스탠스는 논란의 중심에 섰고, 당시 같은 비판을 받은 펜실베이니아대 엘리자베스 매길 총장은 논란 이후 바로 사임했다. 하버드대 이사회는 게이 총장에 대한 논의를 거친 끝에 지난달 12일 재신임할 것을 밝혔지만, 재신임 뒤엔 그의 과거 논문에서 인용 표시가 불충분한 부분이 나오는 등 논문 표절 논란이 일었다. 사실상 반유대주의 논란의 불씨가 다른 곳까지 튀는 모양새가 연출된 셈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모습/사진=MAXAR TECHNOLOGIES

반유대주의 논란 확산, 경직된 서구 사회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자 영어권을 중심으로 반유대주의 논란이 점차 확산됐다. 반유대주의에 강경했던 미국에서도 유대인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반명예훼손연맹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발생한 반유대주의 사건은 총 2,717건으로, 1979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온라인에서는 유대인 혐오 표현과 음모론 등 반유대주의적 밈이 횡행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악으로 규정하며 인과응보라는 여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하 전쟁을 기점으로 유대인 인종차별 발언과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테러 위협 등 반유대주의와 테러리즘을 조장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반유대주의가 점차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악용되는 양상을 띠고 있단 점이다. 각국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역사적 박해의 반복을 막기 위해 내놓은 정책들은 반이스라엘을 반유대주의로 낙인찍을 여지를 남겼다. 서구권 국가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이 적지 않음도 부정할 수 없다. 뉴욕에만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있는 데다 미국에서 출세하려면 이스라엘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는 건 이미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반유대주의 규탄을 가장한 친이스라엘 집회가 거듭 일어나고 있음과 함께 말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쟁 발발 뒤 지금까지 1,000건이 넘는 반유대주의 범죄가 접수됐다 밝혔지만, 사실 대부분은 아랍계 이민자들이 팔레스타인 관련 문양을 흔들거나 구호를 외친 경우다. 무슬림 이민자들이 증오 범죄자로 둔갑하는 현실이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 정치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올바름을 사이에 두고 갈라지는 모습이 애처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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