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자금 브로커 ‘난립’, “브로커 안 쓰면 ‘바보’ 되는 현실 바꿔야”

“정책자금 받아가세요”, 활개치는 브로커에 중소기업 피해 ↑ 명확하지 않은 법률 규정, 구멍 사이로 새 나가는 브로커들 복잡한 서류절차에 나가떨어지는 중소기업들, “브로커 성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

최근 정부 정책자금 브로커 업체가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은 19조원, 300여 개가 넘는 정부 정책자금을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기업에게 상담을 거쳐 정부 자금 조달 방안을 안내한다고 홍보하는 모양새다. 특히 올해 정책자금 마감이 임박했다거나 한 번 정책자금 신청이 거절되면 6개월은 다시 접수할 수 없다는 점을 들며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온라인상에 유사한 게시물을 올리는 업체들은 ‘중소기업지원센터’, ‘비지니스컨설팅’ 등 정식 인가 업체로 혼동하기 쉬운 상호를 내걸고 있으나, 실상은 이들 모두 불법으로 운영되는 업체들이다.

기승부리는 브로커 업체들, 보증기관은 ‘우왕좌왕’

25일 업계에 따르면 연말이 다가오면서 정부 정책자금을 알선해 주겠다며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접근하는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설·운영, 연구개발(R&D) 등 기업에 필요한 정책자금 관련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착수금을 요구하거나 성공 대가로 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등 악질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이들 브로커 업체는 컨설팅 후 착수금 계약 체결을 요구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보험 가입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연스레 중소기업·소상공인 피해로 이어진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정책자금 신청 탈락 후 착수금 반환을 거부하거나 정책자금 융자 알선 대가로 보험 가입을 요구한 경우 등을 피해 사례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중진공, 소상공인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이 브로커 피해 예방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 활동을 원천 차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진공은 정책자금 신청업체에 재직하지 않은 자가 정책자금 신청·대출 과정에서 중소기업 피해를 유발하고 정책목적을 훼손하는 경우를 ‘제3자 부당개입’으로 명시하고 제재 조치를 취한다. 기보 역시 보증상담 시 브로커가 개입되면 안 된다는 내용의 청렴협약서를 체결토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진공 관계자는 “부정 요소 발견 시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에 신고하고 있다”면서도 “착수금·보험 계약 강요 등 구체적 피해사실과 위법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제3자 부당개입을 온전히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보증기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브로커 기업들은 창업 초기 기업에게 마수를 뻗고 있다. ‘단돈 49만원이면 연구소를 설립해 정책자금 가점과 벤처기업·이노비즈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홍보물이 대표적으로, 이들 업체는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 혜택이 주어지는 벤처기업 인증 컨설팅을 유도한다. 특히 프리랜서 플랫폼 ‘크몽’에 게시물을 올린 한 업체는 전화 상담 2만원, 방문상담·코칭 5만원, 인증업무 완전대행 99만원 등 단가를 명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기업 인증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전국 순회 설명회를 진행하고 사칭 컨설팅 업체를 주의하라고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0년 4월부터 정부 상징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한 정책자금 집행기관 사칭 업체를 조사 의뢰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업 성장을 위해 컨설팅을 진행하기 위해 중소기업상담회사 제도가 있지만, 착수금을 받고 정책자금을 안내하는 것은 중소기업상담회사 역할이 아님을 명확하게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기부 정식 등록 중소기업상담회사임을 강조하며 브로커 활동을 하는 업체는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크몽

위법성 큰 브로커 컨설팅, “명백한 미등록 대부중개행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특히 이 같은 정책자금 브로커가 급증했다. 매출 감소로 경영·운영에 필요한 사업자금이 고갈된 중소기업이 다수 발생하자 정부는 이들을 돕기 위해 운영 자금을 저금리에 지원하는 정책자금 제도를 다수 마련했는데, 이 가운데를 파고드는 브로커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은행 대출상품 등을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이같은 금융상품 끼워팔기는 대부업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중기부는 설명한다. 중기부는 “FP가 정책자금 컨설팅을 제공하고 보험계약만 권유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FP가 대출을 중개하고 은행 등 금융기관 또는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았다면 문제가 된다”며 “이는 명백한 미등록 대부중개행위”라고 강조했다.

컨설팅 서비스 이후 보험계약을 유도하는 건 보험업법이 정한 특별이익제공 금지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보험업법 특별이익제공에 해당하는 행위는 금품약속, 기초서류에서 정한 사유에 근거하지 않은 보험료 할인 또는 수수료 지급, 기초서류에서 정한 보험금액보다 많은 보험금의 지급 약속,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를 위한 보험료 대납 등으로, 브로커 사이에서 이 같은 행위가 발각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보험업법 규정은 특별이익의 유형 및 범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과거 금융감독원은 정책자금 컨설팅을 통한 보험계약 유도 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나, 결국 처분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이익제공으로 행정처분을 하거나 형사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사례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이 존재한다. 금융감독원은 ‘보험 가입 유망 고객에게 다이어트 및 운동처방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보험계약을 유치할 경우 특별이익제공에 해당하는가’ 하는 질의에 대해 “다이어트나 운동처방 프로그램을 판매할 목적이 아닌 경우는 금품 제공으로 보기 힘들다”고 회신한 바 있다. 결국 법률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정부기관의 유권해석 및 금융감독원의 가이드라인 등도 존재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원사업 밀려나는 기업들, “‘서류 포장’이 우선시되는 현실”

청년창업 지원사업 등 많은 정부 사업에 브로커가 난립하고 있다. 브로커들은 중기부 산하기관에서 컨설팅을 진행하던 이들이 퇴직 후 활동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과도한 사업계획 포장은 실질적으로 지원사업을 받아야 할 기업들이 밀려나는 결과를 낳는다. 아이템이 좋은 기업보다 서류 포장을 잘한 곳으로 정부지원금이 쏠리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브로커를 통해 누구나 얻어볼 수 있는 정책자금, 이를 신청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개인의 실패가 온전히 각자의 능력이 모자란 탓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공정’을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브로커가 성행한 데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 브로커가 발생한 일차적 원인이 복잡한 서류절차에 있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서 안에는 △기술력 △창의·도전성 △시장 규모 및 성장성 △글로벌화 역량 △수출 계획의 실현 가능성 등을 담아 제출해야 한다. 이밖에 지원사업들도 △기술성과 △시장성 △경제성에 대한 검증과 분석을 요구한다. 현재 중소기업 지원사업을 안내하는 기업마당에 올라와 있는 중기부 관련 정부 진행 사업은 161건인데, 중기부와 유관기관들의 올해 지원 제도 안내 책자 분량은 무려 1,345쪽에 달한다. 이를 자체 인력으로 꼼꼼히 살피고 소화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물론 이조차도 브로커를 막기 위한 장치의 일환이었으나, 결국 역효과만 낳은 셈이 됐다. 브로커 근절을 위한 보다 신중한 협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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