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 미 연준의 금리 선택과 향후 통화시장 정책 방향

미 연준 "장기채 금리 폭등에 단기 이자율 조정 어려울 듯"
한은 "연준은 과거 1990년대 중반과 유사한 미세 조정기 전략 선택할 것"
2025년이나 돼야 인플레이션 2%대 초반 복귀할 것으로 예상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이번 주(10.31~11.1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금융 업계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19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불확실성과 리스크 요인들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다, 이번 FOMC 회의에서 투표권을 보유한 로리 로간(Lorie Logan) 댈러스 연은 총재도 지난 9일 “기간 프리미엄 상승으로 인해 장기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추가 긴축 필요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연준의 주요 인사들이 11월 정책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연이어 내놨기 때문이다.

1)2023년 4사분기~2024년 4사분기는 주요 투자은행들의 전망치 중간값 활용
2)회색 음영 영역은 정책 전환기
3)2012년 1월 명시적으로 공표된 장기 목표 물가 수준(2%)
출처=한국은행, 미 연준, BLS, 각 투자은행

미국 장기 고금리, 1990년대 상황과 비슷해

30일 한국은행은 블로그를 통해 최근 미국의 통화정책 운용 여건이 1990년대 이후 연준이 정책금리를 인상 국면에서 인하 국면으로 전환하던 정책 전환기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90년대 다섯 차례에 걸친 정책 전환기 중 5%대의 높은 정책금리를 장기간 유지했던 1990년대 중반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다.

다섯 차례에 해당하는 전환기는 ①번 1990년 2월에서 1992년 9월, 8.25%에서 3.00%로 금리 인하, ②번 1995년 3월에서 1998년 11월, 6.00%에서 4.75%로 금리 인하, ③번 2000년 6월에서 2003년 6월, 6.50%에서 1.00%로 금리 인하, ④번 2006년 8월에서 2008년 12월, 5.25%에서 0.25%로 금리 인하, ⑤번 2019년 1월에서 2020년 3월, 2.50%에서 0.25%로 금리 인하를 말한다.

다섯 차례 중 ①, ③, ④, ⑤번 전환기에는 경제 위기, 혹은 금융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됐던 탓에 연준도 정책금리를 빠르게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①번 전환기의 경우, 저축대부조합 부실화 사태와 걸프 전쟁이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작동했고, ③번 전환기에는 IT 버블 붕괴, ④번 전환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⑤번 전환기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위축이 있었다. 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되고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만큼, 미 연준이 정책금리를 빠른 속도로 내려 경기 위축에 대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2023년 4사분기~2024년 4사분기는 주요 투자은행들의 전망치 중간값 활용
2)회색 음영 영역은 정책 전환기
3)2012년 1월 명시적으로 공표된 장기 목표 물가 수준(2%)
출처=한국은행, 미 연준, BLS, 각 투자은행

1990년대 금리 전환기, 인플레 장기화에 금리 인하 속도 늦춰

반면 ②번 전환기에는 경제 위기가 없었음에도 연준은 금리 인하를 선택했다. 1995년 당시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고용 여건이 악화되고 있었다. 때문에 6%에 달하던 단기 정책 금리를 5.25%까지 낮추며 통화긴축 강도를 조절했다가 1996년 들어 다시 경기 팽창이 나타나면서 금리 인하를 중단했다. 이어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겪던 1997년과 1998년에는 속칭 ‘신경제(New Economy)’라고 불릴 만큼 4%대의 고성장, 4% 중반 수준의 실업률과 더불어 인플레이션도 2%대 근처로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연준도 1996년 이후 정책 금리를 5.25%에서 유지하다 1997년 3월에 5.50%로 소폭 인상하는 데 그쳤다. 경기 상황이 안정돼 있던 데다 인플레이션이 완만하게 잡히는 상황이었던 만큼, 금리 조절을 할 유인동기가 사라졌던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내년 이후 미국 경기 전망도 ②번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갈 것으로 예측된다. GDP 성장률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실업률이 크게 뛰지 않는 데다, 물가 상승률도 조금씩 떨어져 2~3년에 걸쳐 목표치에 수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들은 2025년도 하반기에 2%대 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최근 중동 전쟁 등의 변수가 상존하는 만큼, 물가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져 자칫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시점이 더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한은은 1990년대 중반 상황을 놓고 볼 때 연준이 이번에도 금리 조정 없이 시장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관측했다. 설령 금리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②번 전환기와 마찬가지로 완만한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국 시장 금리 스프레드/출처=Financial Times

시장도 연준의 방향 읽고 예상치 조정 중

지난 3월 SVB(실리콘밸리은행) 예금인출 사태 및 파산을 겪으며 시장에서는 연준이 조기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연준은 연이은 보도에서 금융 시장 상황이 불안한 것은 맞지만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은 데다 고용 시장 상황이 좋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시장과 연준 간의 격차가 상당히 컸으나 6월 이후 들어서는 미국 금융 시장도 장기간 고금리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최근 연방기금금리 선물에 반영된 2024년 말 정책금리 기대치는 4.7~4.9%로 연준이 제시하고 있는 5.0~5.25%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장기채 시장 금리는 5%대로 올라선 상태다.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던 지난달까지만 해도 장기채 금리가 4.5% 근처에서 유지됐으나, 이달 들어 장기간 고금리가 유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시장이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지난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국채 30년 만기물의 시장 금리는 다시 5%를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중동 전쟁 등의 여파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담, 경기 침체 우려 등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장기채는 당분간 5%대의 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추가 금리 상승 카드를 꺼내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미 장기채 금리가 크게 뛰어 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단기 금리를 조정해 시장을 추가적으로 자극하기보다 당분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달 들어 연준 관계자들이 연이어 관망세를 담은 발언을 내놓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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