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증시 상장 나선 日 ‘고쿠사이’, 미중 갈등 아래 꺾인 날개 회복하나

中 정부에 인수합병 가로막혔던 고쿠사이, 이번엔 IPO 미중 갈등 속 ‘전화위복’, 韓도 반사이익 얻을 수 있을 듯 알력다툼 수단 된 반도체, 미중 갈등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진=고쿠사이 일렉트릭 홈페이지

일본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고쿠사이 일렉트릭이 이르면 내달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다. 2018년 소프트뱅크 이후 최대 규모의 IPO(기업공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초 고쿠사이는 지난 2021년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와 인수합병을 노리고 있었으나 중국 정부의 승인 불허로 인해 실패한 바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전략 개선에 장애가 발생했지만, 그나마 이번 상장으로 인해 숨통은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KKR, 반도체 기업 ‘고쿠사이’ 도쿄증시 상장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현지 시각)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브츠(KKR)가 올해 4분기에 고쿠사이의 도쿄증시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고쿠사이의 상장 시점은 내달 중으로 계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쿠사이는 반도체 웨이퍼 증착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 2018년 일본 히타치 국제전기에서 분사된 뒤 KKR에 매각됐다. KKR는 고쿠사이의 기업가치를 4,000억 엔(약 3조6,000억원) 수준에서 상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는 2018년 소프트뱅크(7조2,000억 엔) 상장 이후 최대 규모다.

미국 정부가 첨단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에 나선 게 고쿠사이 상장을 시도하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쿠사이가 보유한 기술이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전략에서 중요해짐에 따라 고쿠사이의 몸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심화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최근 일본 증시의 활황도 상장 추진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올 들어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7.4%가량 상승했다. 지난 7월엔 3만3,7000선을 넘어서면서 1990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내달까지 20개에 이르는 기업들의 도쿄증시 줄상장이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시장 분석가들은 “미중 긴장과 관련된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작년에 IPO 계획을 미뤘던 기업들이 올해 대거 상장 신청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재편에 따른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KKR은 투자금을 일부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앞서 KKR은 지난 2019년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에 고쿠사이를 35억 달러(약 4조6,700억원)가량에 매각하려 했으나 중국 규제 당국의 승인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2021년 최종 무산된 바 있다.

韓 공장 확장하는 고쿠사이, “우리나라에도 호재”

고쿠사이 상장 소식은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호재다. 고쿠사이가 올해 한국의 평택 공장을 확장하겠다고 밝히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쿠사이는 글로벌 톱10 반도체 장비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주요 기업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규제 영향으로 장비 기업들이 중국 사업을 축소·철수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은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사들이 있다는 점도 고쿠사이가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는 주된 이유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다 보니 고쿠사이의 상장으로 우리나라와 고쿠사이 사이의 밀착 관계가 더욱 활성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고객과 밀착 관계를 만드는 데 거액을 투자하는 건 반도체 기술의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제조공정이 고도화하면서 고객과 언제든지 공동 개발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않고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첨단 반도체 업체들이 3~5개로 과점화하면서 장비회사의 선택과 집중이 수월해진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기술이 고도화하는 만큼 장비 업체의 개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 5대 반도체 장비업체의 연구개발비는 3,000억 엔(약 2조8,845억원)으로 10년 전보다 2.3배 늘었다. 상장 이후 고쿠사이가 우리나라에 좀 더 힘을 실을 것이란 언급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pexels

미중 갈등 심화에 짓눌린 날개, 상장으로 숨통 트나

한편 지난 2021년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AMAT는 고쿠사이 인수를 시도했으나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실패한 바 있다. 2019년 7월 AMAT는 코쿠사이일렉트릭의 모든 주식을 인수한다고 발표하고 인수합병 작업을 추진해 왔다. 공급자 입장에서 다양한 장비를 갖추면 새로운 반도체 개발 가속화를 위한 기술 경쟁력 확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양사 간 합의는 이미 이뤄진 모양새였기에 양사의 인수합병 작업은 2020년 6월께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인수합병 작업은 암초에 부딪혔다.

당시 중국 정부가 양사 합병을 불허한 건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었다. 치열해지는 반도체 시장에서 양국 간 경쟁이 관련 업계의 재편과 기업의 성장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후 AMAT는 지난 2021년 세 번째 연장을 발표하면서 인수가를 22억 달러(약 3조원)에서 35억 달러(약 4조6,700억원)로 60% 인상하는 등 합병에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중국 정부의 아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앞서 지난 2015년에도 AMAT는 도쿄일렉트론 인수를 추진했지만 중국 정부가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승인을 거절하면서 무산됐다. 중국 정부의 미 경쟁의식이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중 간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반도체 업계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업계는 “반도체가 단순히 산업계 기반을 넘어 국제정치 알력 다툼 수단이 돼버린 상황”이라며 “기업들 입장에선 상황을 살피며 최대한 이득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 가로막고 있으니 답이 없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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