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먼저 금리인하 나선 남미, ‘초인플레’ 교훈 통했다

칠레 이어 브라질 금리인하 결정, 멕시코·페루·콜롬비아 합류 전망 브라질 물가 상승률 3.16%, 2020년 9월 이후 약 3년 만에 최저치 선진국보다 앞선 긴축 대응 효과적이었다는 평

남미 국가들이 금리 인하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 중국과 함께 남미는 선진국보다 일찍 통화 정책에 긴축에 나섰다가 물가가 안정되자 신속하게 기어를 전환해 금리 인하에 나선 유일한 글로벌 지역이다. 남미는 브라질을 필두로 인플레이션을 완화에 적극적으로 앞다퉈 선진국들보다 일찍 대응에 나섰고, 해외 언론들로부터 선진국보다 빠르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줄줄이 금리인하 나서는 남미 국가들

지난 3일 칠레 중앙은행은 시장의 예상치인 50~75bp를 뛰어넘는 100bp(1bp=0.01%포인트)의 기준금리 인하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블룸버그와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전년 11월 이후 9개월 동안 11.25%로 동결됐던 기준금리가 단 한 번의 조치로 10.25%로 인하됐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2일 기준금리를 13.75%로 50bp 인하했다. 시장에서는 25bp 인하를 예상했지만 이를 뛰어넘는 대담한 조치였다. 통화 당국자들은 “인플레이션 하락 시나리오가 예상대로 전개된다면 다음 통화정책 회의에서 같은 폭의 추가 인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지난해 정점을 찍었던 인플레이션이 대폭 완화되면서 남미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실제로 6월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율은 3.16%로 하락해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3.25%를 밑돌았다. 이는 2020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마찬가지로 칠레의 6월 인플레이션율도 전년도 8월 최고치(14.1%)의 절반(7.6%)에 그쳤다.

크리스티아노 올리베이라 브라질 상업은행 방코 페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근원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하락하고 있고 통화정책이 성공적”이라며 브라질의 금리 인하 결정이 “기술적으로 가장 올바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산 운용사 아머캐피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안드레아 다미코도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가 시기상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얻은 교훈

전문가들은 주요 7개국(G7)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통화 정책을 긴축하겠다는 약속이 성과를 거뒀다고 입을 모은다. 브라질은 2021년 3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년 후인 2022년 3월에야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우 이보다 늦은 지난해 7월에야 기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남미는 2021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공급망 병목 현상 및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재정부양책을 폈다. 그러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하게 치솟자, 기준금리를 올렸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당시 사상 최저치인 2%에서 14%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마찬가지로 칠레 중앙은행도 비슷한 기간 동안 0%에 가까운 금리를 인상해 전년 말 11.25%에 도달한 바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남미 중앙은행들은 미국 연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가파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다. 이에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브라질과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등 중남미 5개 국가들의 평균 인플레이션이 연말까지 중앙은행들의 목표치를 400bp(1bp=0.01%p) 정도 웃돌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해외 언론들은 이처럼 빠른 대응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교훈을 얻은 덕분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1990년 당시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율은 무려 2,948%에 달했고, 아르헨티나는 물가가 2,315%나 급등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글로벌 경제 책임자 클라우디오 이리고옌은 “역설적이게도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통화 당국이 미국 연준과 같은 신뢰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며 “이 지역에서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긴축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남미 경제

전문가들은 거의 2년에 걸친 긴축에도 불구하고 남미 경제가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 브라질의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1.9%로 시장 예상치인 1.3%를 상회했으며, 이는 주로 농업 부문의 21.6%의 견조한 성장에 힘입은 결과다. 이에 씨티은행을 비롯해 다수의 투자 은행이 올해 브라질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앞으로 칠레와 브라질에 이어 페루, 멕시코, 콜롬비아도 연말까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미주개발은행(IDB)의 에릭 파라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남미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은 전반적으로 신속하고 효과적이었지만, 아직 승리를 선언하기엔 이르다”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지수의 하락세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는지 불확실성이 있기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디커플링 나서나

7월 물가상승률 2.3%를 기록한 한국도 남미처럼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7%로 전월 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물가상승률이 2%대로 내려간 것은 지난 2021년 9월(2.4%) 이후 21개월 만에 처음이다. 국내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월(6.3%)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오다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변동성이 큰 식료품 및 에너지 비용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도 한 달 만에 3.5%로 0.4%포인트 하락해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리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은 물가 통제에 성공한 국가가 됐다는 점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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