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금융 근절’ 목소리 높인 尹, 정작 예산은 “턱없이 부족해”

채무대리인제도 예산 부족 심화, 홍보비도 소진
대부업 시장서도 밀려나는 저신용자들, 사각지대 어쩌나
역대급 세수 부족 시달리는 정부, '영끌'로 겨우 버티곤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 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의 발목을 잡는 건 예산 문제다. 특히 경제적 약자의 불법채권추심 피해를 막고자 도입된 채무대리인제도는 수요 대비 부족한 예산 때문에 ‘다음 연도 예산 당겨쓰기’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모양새다. 불법사금융의 부작용이 커지는 상황에서 안정적 제도 운영을 위한 충분한 재원 공급 필요성이 제기된다.

수요 못 따라가는 예산, “내년도 예산만 겨우 끌어다 써”

13일 금융위원회와 국회에 따르면 내년도 채무대리인제도 예산안은 10억3,000만원이다. 올해 예산 8억8,600만원보다 16.3% 증액됐지만, 그 실상을 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채무대리인제도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변호사 무료로 채무자를 대신해 불법사금융업자의 추심행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금융위는 공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해당 제도를 이용하면 가족 등 제3자에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불법추심 위협을 피할 수 있어 제도 이용자가 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채무대리인 선임 건수는 1,891건인데 올해 상반기는 2,545건으로 34.6% 늘었다.

인기가 높다 보니 예산은 금방 동이 났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이미 지난 9월 모두 소진됐고, 홍보비로 책정된 1억원마저 사업 변경을 통해 선임 지원에 투입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2021년에도 그해 7월에, 지난해엔 9월에 해당 예산이 모두 조기 집행됐다. 지원자가 늘고 재정은 부족해지자 금융위는 2021년부터 공단에 보조금 지급 시기를 ‘대리인 선임 지원 결정 시’에서 ‘지원 종료 시’로 6개월가량 늦췄다. 그 결과 2021년 하반기에 이뤄진 선임 지원 비용 5억3,300만원은 2022년 예산에서 지급했다. 지난해 하반기 선임 지원 비용 2억7,400만원도 올해 예산에서 투입됐다. 내년도 예산을 활용해 겨우 줄만 이어 놓고 있는 셈이다.

사진=Adobe Stock

예산 소진에 홍보 중단까지, 저신용자의 무덤 된 韓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감독원이 불법 사금융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불법사금융 그만’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은 해당 채널을 지난 2020년 8월 개설해 3년째 운영 중이지만, 해당 채널에 게시된 영상은 33개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게시물당 조회수는 최저 1회, 최고 2,900회 수준으로 편당 평균 450여 회를 겨우 넘었다. 3년간 운영한 채널의 구독자 수는 316명에 그쳤다. 이조차 올해 1월 2일 이후 7개월간은 게시물 업로드 활동이 전혀 없었다. 실상 채널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련 부서 관계자는 “금감원 홈페이지에 불법 사금융 관련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지난 7개월 동안엔 유튜브에 미처 등록하지 못했다”며 “비용 문제로 외부 용역을 사용하지 않고 AI 아나운서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소비자단체는 다양한 경로로 홍보하기보다 얼마나 잘 홍보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꼬집는다. 불법 사금융 피해 특성상 피해에 대한 구제를 받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전 예방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금감원이 불법 사금융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나 저신용자들이 사금융으로 빠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이고 효과적인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는 올해 예산 소진 후 홍보를 중단하는 등 최소 사업만 운영 중이다. 그 결과 올해 1~8월까지 월평균 370건이던 지원 건수는 120건 수준까지 줄었다. 이 같은 소극적 대처에 전문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정부 예산이 빠르게 소진됐다는 건 그만큼 불법추심 등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많다는 의미인데, 이를 무작정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대부업 연체율이 치솟으며 채권 회수를 위한 추심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대부업 연체율은 7.3%로 6개월 만에 1.3%p 상승했다. 금감원은 대부업 연체율 상승이 불법추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저신용자는 대부업 시장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 이용자는 98만6,000명으로 지난해 6월 대비 7만5,000명 감소했다. 금감원은 대부업 시장에서 사라진 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시장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채권추심활동 관리·감독을 강화해 불법추심행위룰 차단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이나 소액생계비대출 등 서민금융상품을 공급해 저신용자 불법사금융 이용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정부 차원에서 불법 사금융 척결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내년도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예산결산위원회에서 4억2,500만원 예산 증액 의견을 제출한 상태다.

다만 예산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들어 우리 정부가 역대급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올해 7월까지 걷힌 세금은 총 217조6,000억원인데,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43조4,000억원이나 적은 수치다. 정부는 이 같은 세수 구멍을 ‘영끌’로 메꾸고 있다. 올해만 한국은행에서 113조6,000억원을 빌렸고, 이마저도 부족해 40조원 규모의 재정증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빌려다 쓴 돈의 이자만 약 4,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필요할 경우 각종 정부 기금이나 쓰려고 했던 예산을 쓰지 않은 예산 불용액을 끌어다 쓴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불법 사금융 근절에 힘을 싣고 싶어도 실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가 재정 정상화라는 기본 전제를 이뤄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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