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합병’ 기권한 국민연금, 부진한 주가에 ‘주식매수청구권’ 노려

국민연금, 임시 주총서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안에 기권표 던졌다
기권 목적은 어디까지나 주식매수청구권, 실제 합병안에 영향 미칠지는 의문
수익성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민연금, 주가 부진 이어지면 청구권 행사할 가능성 커

국민연금공단이 23일 셀트리온 임시 주주총회에서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 건에 대해 기권을 결정했다. 셀트리온의 주가 부진으로 손실 위험이 커진 가운데, 주식매수청구권 확보를 위해 기권표를 던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기권표는 어디까지나 ‘수익성’에 기반한 것이며, 합병 성사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 주식매수청구권 확보 위한 ‘기권표’

국민연금은 셀트리온 지분 7.43%(1,087만7,643주)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이나, 올 들어 셀트리온 지분을 점차 덜어내고 있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셀트리온 지분 6,495억원을 매수하고 7,155억원을 매도했다. 순매도액은 661억원이다. 같은 기간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식도 405억원 순매도했다. 올해 들어서 처분한 두 기업의 지분 규모는 자그마치 1,000억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기권표’를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셀트리온의 부진한 주가 때문이다. 지난 20일 셀트리온은 주식매수청구권 기준가 15만813원 대비 6.06% 낮은 14만2,200원에 장을 마쳤다. 이전부터 지분을 줄여오던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전략인 셈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전날까지 서면으로 반대 의견을 보내고, 합병 표결에서 기권 또는 반대를 표시하면 된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은 10월 23일부터 11월 13일까지다. 이 기간 동안 셀트리온 주가가 눈에 띄게 상승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은 그대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국민연금이 지분 전량(7.43%)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셀트리온은 약 1조6,405억원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셀트리온이 당초 밝힌 주식매수청구권 한도인 1조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차후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일반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더해질 경우 셀트리온이 지급할 자금 규모는 이보다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 지분 영향력 부족, 합병안 무산 가능성 낮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기권표가 셀트리온 합병안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이 오너 지분율이 높은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만큼의 지분을 보유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실제 올 초 동아쏘시오홀딩스, 셀트리온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던진 국민연금의 반대표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안건에 반대하고 나섰다. 사외이사 4명을 포함해 총 7명의 이사의 보수총액 또는 최고한도액을 20억원으로 책정하는 안건이다. 국민연금 측은 “보수한도 수준이 보수 금액에 비춰 과다하거나, 보수한도 수준 및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춰 과다한 경우에 해당해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실적이 전년 대비 악화한 가운데, 보수 금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사진=셀트리온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 사내이사 선임 안건과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드러냈다. 서 회장이 사내이사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셀트리온이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았던 점, 경영 성과 대비 보수한도 수준이 과다하다는 점 등을 문제로 내건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들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어디까지나 ‘수익성’이 먼저다

국민연금 역시 이 같은 낮은 지분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기권표는 합병 여부와는 무관하게 ‘수익’을 위해 내린 결단이었던 셈이다. 국민연금은 본질적으로 재무적 투자자(FI)인 데다, 정부 감사 기관들이 가하는 ‘실적 부담’으로 인해 늘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손익을 계산해 합병안에 기권표를 던지고, 주식매수청구권을 요청한 사례 역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LG화학과 LG생명과학이 합병을 진행하던 지난 2017년, 국민연금은 LG생명과학 주식 보유분 166만977주 중 약 67.75%에 달하는 112만3,687주를 매수청구했다. 주식매수청구권 청구 마감일 LG생명과학 주가(6만5,300원)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6만7,992원)을 밑돌았기 문이다. 당시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가액은 약 764억원에 달했다.

지난 2021년에는 SK와 SK머티리얼즈의 합병안에도 기권표를 행사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합병 목적, 합병 비율, 합병 후 지분율 변화 등을 고려해 합병계약서 승인안에 대해 찬성했으나, 찬성 의결권은 SK머티리얼즈의 기준 주가가 주식매수예정가액보다 높은 경우에만 행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결정 마감일인 27일 종가(39만2,800원)가 주식매수예정가(41만6,670원)를 밑돌았고, 국민연금은 사전에 내건 조건에 따라 기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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