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국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미·중 패권 경쟁 속 기술 경쟁력 더욱 높여야”

니어 재단, ‘미·중 갈등 및 경제 블록화 속 한국의 산업정책 방향’ 포럼 개최 미중 갈등 장기화에 韓 반사이익, 다만 ‘탈중국 전략’ 후폭풍 대비도 중국의 쇠퇴가 곧 우리에겐 기회, 중국에 밀린 ‘기술·산업 경쟁력’ 좁혀 나가야

최근 국내 산업계는 미·중 패권 경쟁의 장기화에 따라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전기차·이차전지 등의 4차산업 혁신 분야에서 중국 및 경쟁국과의 격차를 벌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주요 수출 분야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급격한 탈중국 흐름에 따른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중 갈등에 한국 전기차, 2차전지, 태양광 산업은 호황기

민간 싱크탱크 니어(NEAR)재단이 주최하는 ‘미·중 갈등 및 경제 블록화 속 한국의 산업정책 방향’ 경제 포럼이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포럼에는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장덕구 니어 재단 이사장, 주현 산업연구원 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앞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발제를 맡은 김 원장은 “미국의 대중 정책 기조는 중국의 붕괴가 아닌 평화공존 속 미국의 우위 유지에 있다”면서 “미중 경쟁은 장기화 첨예화 될 것이고, 중국의 변화 유도보다 중국과의 경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컴퓨터, 바이오, 친환경 등 특정분야의 과학 기술을 선도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인식하에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확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대(對)세계 의존도는 줄이고, 세계의 대중국 의존도는 높이는 비대칭적 디커플링(탈동조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10년간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블록화에 대비해 왔다.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웃돌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투자는 줄지 않고 과거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날 토론자로는 나선 장 차관도 “미국의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중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막는 상황에서 한국의 전기차, 이차전지, 태양광 산업은 미국에서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중 패권 경쟁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있을 후폭풍을 우려하는 분석도 잇따랐다. 장 차관은 “한국이 미국과 산업 협력에 나서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면서 “이 같은 딜레마 속에서 실리를 취하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국 무역 수지는 약 200억 달러(약 25조5,2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400억 달러(약 51조원) 흑자를 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대중 수출이 대폭 줄어든 셈이다. 대중국 투자 기업도 같은 기간 800곳에서 200곳으로 급감하면서 주력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미국 흐름 속 자체 기술 개발에 분주한 중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지속됨에 따라 특히 기술 분야에서의 디커플링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되고 있다. 2018년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 화웨이의 대미 수출에 대한 규제를 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를 계기로 미국은 지난 5년간 중국에 대한 자국의 규제를 단계별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미국의 각종 규제와 코로나 봉쇄 정책 등의 영향으로 올해도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 2분기 경제성장률 모두 전망치를 하회했으며, 국가 경제의 주요 동력인 수출 역시 지난 6월 4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지난달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급감한 외국인 투자와 내수 소비 등에 경제 전반이 휘청이고 있다.

경제 회복과는 별개로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등에 대한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중국의 반도체 등 IT 기업들은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거나, 미국의 제재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를 대체할 방법을 찾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의 통신기업 화웨이, 검색회사 바이두,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 등이 다양한 구형 반도체를 활용해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역시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다. 정부 주도의 국가 펀드를 마련해 반도체 기업 지원에 나서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양쯔메모리(YMTC)에 19억 달러(약 2조4,244억원)의 자금을 직접 지원하며 자체 공급망 구축에도 나섰다. 광저우시도 올해 반도체 및 기타 기술 프로젝트에 시 예산 210억 달러(약 26조7,960억원)를 할당하며 반도체 장비 공급업체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크게 좁혀진 한중 기술격차’, 일부 분야에선 주도권 내준 상황

첨단산업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 경쟁력은 이미 중국에 따라잡혔거나 뒤처진 상황이다. 국가경쟁력을 종합 평가하는 IMD 국가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1994년 한국은 32위, 중국은 34위를 기록했지만, 2022년 순위는 중국이 17위, 한국은 27위로 역전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기술수준평가’에서도 2020년 우리나라의 중점과학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 보유국(미국) 대비 80.1%, 중국은 80.0%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실제 우리 기업들이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던 분야를 중국이 추격에 성공한 사례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LCD 사업 분야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는 기술 수준이 동일한 중국 기업으로부터 가격 경쟁에 밀리자 31년간 운영해 온 LCD 사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도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반도체 육성 정책과 거대한 내수 시장 기반에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미중 갈등으로 중국 경제가 정체된 상황을 기회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전기차·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부문에서의 격차가 강조되고 있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기는 기술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이 중국에 뒤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술 경쟁력 없이는 중국에 대접받을 수 없다”면서 “현 정부가 강조하는 중립 외교를 위해서는 외교안보가 아니라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우리 경제가 비교 우위를 가진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의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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