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후 16년만에 처음 보는 숫자” 미국채 10년물 금리, 투자자들 일제히 채권 시장으로 눈 돌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5% 저항선 돌파에 결정적인 영향
이미 흔들리고 있는 미 중소형 은행, 기보유 채권 가격 하락에 '뱅크런' 우려도 
미국채 금리 급등세, 주식 시장은 역풍 부는 모습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2007년 이후 16년 만에 5%대를 돌파했다. 미국채 금리가 치솟자 기존 주식 시장에 발을 들였던 투자자들도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미국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미국채를 기보유한 투자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타격은 더욱 심각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 중소형 은행들은 이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자산 건전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는데,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기보유한 포트폴리오 가치도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만큼 예금자들이 미국채 투자를 위해 은행에서 대규모로 돈을 빼간다면, 미국 중소형 은행이 최악의 상황인 ‘뱅크런’을 막기 위해 기보유한 미국채를 기존보다 할인된 가격에 팔면서 결국 평가 손실이 실현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16년 만에 5% 돌파한 미국채 10년물 금리

19일 파이낸셜 타임즈와 로이터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이날 오후 5시 직후(미 동부시간 기준) 연 5.001%로 5% 지지선을 돌파했다.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5% 선을 뚫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덩달아 30년물 국채 수익률도 이날 5.10%까지 높아졌다.

이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다”며 추후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부분이 채권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제롬 의장은 “2% 인플레이션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신뢰를 보내기엔 섣부르다”고 말했다. 이어 “9월 인플레이션은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덜 고무적(somewhat less encouraging)이었다”며 “앞으로 몇 분기 안에 인플레이션이 안정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아직 긴축의 고삐를 늦출 때가 아니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기준 금리 인상은 투자자 관점에서 모든 자산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게 되고, 이는 국채 금리도 마찬가지로 끌어올리게 된다.

월가 주요 인사들도 고금리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레토릭을 잇달아 던지면서 시장 경계감을 키우고 있다. 제미이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채 금리가 7% 수준으로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올리퍼 퍼쉬 웰스파이어 어드바이저 수석 부사장도 “10년물이 새로운 상승 추세를 형성하고 있으며, 주식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파월 의장이 시장에 인플레이션 우려감을 확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 장기채 금리가 5%선을 돌파하자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도 동반 하락 출발한 모습이다. 20일 오전 9시9분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39% 내린 2382.11을 기록했다.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약 95억원, 47억원을 순매도했고, 기관은 139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도 전 거래일 대비 1.65% 내린 771.11을 기록했다.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65억원, 5억원 순매도했고 기관이 75억원 순매수했다.

미국채 매력도 커지면서 주식 시장 발 빼는 투자자들

10년물 금리 5%는 금융 시장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진다. 국채 투자의 매력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발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 로우 FHN 파이낸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 수익률 소식은 오랫동안 국채를 생각해 본 적 없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10년물 만기 국채가 좋은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며 “이는 동시에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밝혔다.

실제 채권 금리가 높아지면서 주식시장에는 역풍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여름부터 시작된 미국채 금리 상승세에 따라 S&P500지수는 8월 초부터 현재까지 약 6% 하락했다. 특히 시장 참여자들이 현재보다는 미래에 많은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성장주보다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가져다주는 채권에 주목하면서 성장주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성장주 상장지수 펀드인 ‘Technology Select Sector SPDR ETF(티커: XLK)’는 채권 수익률 상승세가 가시화되기 이전인 7월 중순 정점을 달성한 이후 현재까지 6.9% 하락했다. 아울러 채권 대용 금융상품으로 취급되던 배당주 중심 ETF도 채권 금리가 높아지면서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대표적인 배당주 중심 ETF인 ‘Utilities Select Sector SPDR ETF(티커: XLU)’는 7월 중순 이후 현재까지 약 14%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미국채 매력도가 증가하면서 현재의 수익성보다는 미래를 보고 투자받는 IT 및 스타트업 쪽 기업들의 경우 자금 유치에 본격적으로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모양새”라며 “특히나 요즘처럼 벤처, 사모펀드가 얼어붙은 상황에 굳이 위험 부담하면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감행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국채에 투자하겠다는 출자자들이 많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섬 남쪽 끝에 위치한 월스트리트/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채 기보유 금융 기관 피해도 적잖을 듯

한편 앞서 살펴봤듯 5% 선을 돌파한 미국채 금리 소식은 더 높은 수익률로 안전자산을 확보하기를 기대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이미 해당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투자자들에게는 되레 ‘재앙’으로 인식되고 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채 금리 상승세는 채권 상장지수 ETF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채권 ETF인 ‘iShares Core U.S. Aggregate Bond ETF(티커: AGG)’의 경우 올해까지 연간 단위로 3년 연속 가격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 업계에선 기존 미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중소형 은행들이 미국채 금리 급등세로 인한 악영향을 더욱 크게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대형은행과 달리 당국 규제와 감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소형 은행은 지난 10여 년간 유례없는 ‘유동성 파티’ 속에서 ‘하이리스크-하이 리턴’ 성격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대거 뛰어들었는데, 최근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관련 자산의 가치가 이미 대거 하락한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준 금리 급등으로 인해 미국채를 기보유한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포트폴리오 가치 또한 덩달아 하락하면서 은행 자산 건전성에 전반적으로 금이 생기기 시작한 모습이다. 만일 이때 고금리에 매력을 느낀 투자자들이 미국 중소형 은행에서 예금을 대거 인출해 간다면, ‘급전’이 필요해진 미 중소형 은행이 결국 기존 구매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국채를 매각해 시세 차손으로 인한 타격이 커지고, 심지어 국채 매각도 여의찮을 경우 종국적으로 뱅크런이 촉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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