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물가 상승률 25개월 만에 최저치, 정부 차원의 ‘물가 압박’ 효과 봤나

물가 상승률 ↓, 생활물가지수도 ‘하향 곡선’ 물가 압박, 정부의 ‘노력’인가 정부의 ‘간섭’인가 정부 차원 대책 이어진다는 점에선 긍정적 반향 일어날 듯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대로 떨어졌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면서 지난 6월에 이어 두 달 연속 2%대 물가를 기록한 것이다.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이 실제로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중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정부가 기업 상품 가격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소비자물가지수 2.3% 상승, 25개월 만에 가장 낮아

2일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 대비 2.3% 오르는 데 그쳤다. 2021년 6월(2.3%) 이후 2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물가 상승률은 1년 전인 작년 7월(6.3%) 6%대로 정점을 찍었다 점차 감소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석유류 가격 하락과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석유류 가격은 1년 전 대비 25.9% 하락하며 1985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서비스 물가 상승률 또한 3.1%까지 떨어졌다. 지난 5월(3.7%), 6월(3.3%)에 이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체감 물가도 서서히 잡히는 모양새다. 소비자가 자주 사는 114개 품목으로 이뤄져 체감물가를 반영하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 대비 1.8% 올랐다. 1%대 상승률은 2021년 2월(1.7%) 이후 29개월 만의 일이다. 생활물가는 작년 여름 8%에 달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작년 하반기 6~7%대의 상승률을 보였지만, 올해 1월(6.1%)부터는 내리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美 인플레이션도 ‘막바지’

미국 또한 인플레이션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지난 7월 미 노동부는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1년간 0.1% 상승했다고 밝혔다. 2020년 8월 이후 근 3년 만에 가장 작은 전년 대비 오름폭이다. 5월(0.9%)과 비교해도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약해졌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해 기조적 물가 흐름을 보여 주는 근원 P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6% 올라 상승폭이 비교적 컸지만, 역시 오랜만에 보는 작은 수치로, 2021년 2월 이후 최소치였다.

당시 공개된 전년 동월 대비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또한 시장 전망치를 크게 하회하는 3.0%를 기록했다. 기업 간 거래 가격을 나타내는 지표인 만큼, 도매 물가로도 불리는 생산자물가가 소매 물가인 소비자물가에 선행한다는 점에서, 향후 물가 상승폭 둔화가 더 가팔라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직 고용시장 불안정성 등 걸림돌이 남아 있긴 하나 물가 안정성이 제고되면서 금리 인상을 쉬어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물가 상승 이어지는데, 이례적인 韓 상황

그러나 여타 선진국을 중심으로는 여전히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이 둔화된 게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은 OECD 38개 회원국 중 6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물가가 덜 오른 나라는 스위스(2.2%), 그리스(2.8%), 덴마크(2.9%), 스페인(3.2%), 일본(3.2%)뿐이었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미국 또한 5월 기준 물가 상승률이 4%에 달했다. 같은 달 유럽연합(EU)은 7.1%, 영국은 7.9%였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기준금리를 5%~5.25%까지 올리고도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영국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으면서 5%대에 이르렀다. 반면 우리나라는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평균 2% 중반이나 후반대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5% 선에서 멈춘 우리나라의 물가가 먼저 안정된 건 상당한 성과라 볼 수 있다.

이 같은 차이는 우리 정부가 간접적으로 민간 물가에 개입한 결과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정부가 물가를 관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우리 정부는 물가의 세부적인 지수를 보면서 많이 오른 게 있으면 기업에 직접적으로 가격을 조정해달라며 효율적인 관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를 압박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 또한 이 같은 배경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UTOIMAGE

정부 차원의 ‘물가 압박’, 대부분 긍정적 반응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밀값이 떨어지는데 라면값만 올라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부 차원에서 바로잡은 건 잘한 일이란 것이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나라 시장 구조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 정부가 기업의 상품 가격에 간섭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침을 날린 것이다.

정부의 물가 잡기가 완전히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8월 우유 원유 가격 인상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우유업계 및 유제품 생산 업체, 낙농가는 원유 가격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가격 인상이 확정될 경우 우유뿐 아니라 빵·과자·아이스크림 등 관련 식품 물가도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라면·과자업계 가격과 달리 낙농가 원유 가격엔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낙농가들이 생산비 급등으로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며 원유가격 협상 시 낙농가의 현실을 반영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물가 수치가 안정되기 시작했으나 정작 먹거리 물가는 두 자릿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라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3.5%에서 10월 11.7%로 크게 오른 뒤 8개월 연속 10% 선을 넘었다. 각 제조사들이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렸기 때문이다. 주요 먹거리 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최근 소비자물가의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과 외식 부문의 세부 품목 112개 중 27.7%인 31개는 물가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했음에도 먹거리 상승률이 둔화됐다는 체감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또다시 기업들에 가격 안정 압박을 가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정부는 사실상 압박이 어려운 낙농업계에 대해서도 “가공식품은 수입 원유를 많이 쓰는 특성상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가격 인상 자제’ 신호를 보낸 상태다. 정부의 압박이 먹거리 물가 안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최소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대중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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