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없는 국가’ 이탈리아, 각종 저출산 대책에도 ‘끝 없는 추락’

이탈리아 청년 인구 비율 23% 감소,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청년 실업, ‘니니세대’ 등 신조어도 등장 출산 기피 현상 심화하는데, 이탈리아 내 정책 성과는 ‘미미’

유럽 지역에서 저출산의 대명사로 꼽히던 이탈리아가 결국 ‘유럽에서 가장 청년이 없는 국가’가 됐다.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 청년층은 지난 20년 동안 300만 명 감소했는데, 이는 전체 청년 4명 중 1명(23%)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에 이탈리아는 자녀를 2명 이상 출산하면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는 등 파격적인 저출산 대책을 검토 중에 있다.

이탈리아 내 청년 인구 비중 17.5%, 인구 감소 ‘가시화’

15일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가장 청년층이 적은 국가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18세~34세 인구는 지난 20년간 300만 명 줄어 1,020만 명까지 감소했다. 더타임스는 “이 같은 청년층 급감 현상은 이탈리아의 노동력 유지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청년 인구 수는 1994년 1,520만 명을 달성한 이후 30년 넘게 연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내 청년 비중은 약 17.5%로 유럽 평균인 19.6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알렉산드로 로지나(Alessandro Rosina) 밀라노 가톨릭대 인구통계학자는 “수명이 긴 이탈리아인을 감안해 노동력 감소에 따른 연금 충당 가능성이 줄어드는 충격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는 노동력 증대를 위해 출산율 증가를 유도하고 있지만 인구는 오히려 줄고 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 출생아는 39만3,000명으로 사상 최저점을 찍었고, 인구는 17만9,000명이 감소해 5,900만 명 아래로 줄었다. 로지나는 “이탈리아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평균 이상의 출산율을 기록했지만 1980년대부터 평균을 밑돌며 세계 최저수준이 된 뒤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는 자녀를 2명 이상 낳을 경우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는 등 파격적인 저출산 대책을 검토하고 나섰다. 다자녀 가구 세제 혜택은 여러 저출산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세금을 ‘전부’ 면제해 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저출산 현상이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가부장적 분위기의 이탈리아

이탈리아가 처한 인구 위기의 원인으로는 부양 부담 증가로 인한 고령화 사회 대응능력 부재, 국가안보 문제, 국가 경쟁력 하락, 노동력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이민 유입 등을 들 수 있다. 더타임스는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청년층이 ‘더 오래 집에 있고, 더 늦게 결혼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 이탈리아 남부에선 청년층 71.5%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는 유럽 평균인 49%와 대조적이다. 칼라브리아 지역에서는 35.5%가 소위 니트족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탈리아인의 평균 결혼 나이는 2004년 32세에서 올해 36세로 4세나 올랐다.

이탈리아 특유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도 저출산 현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탈리아의 가족정책은 전통적으로 가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이렇다 보니 이탈리아 내부에서조차 “국가 차원에서 가족정책에 투자하는 예산액이 지나치게 적은 데다 그나마 수립된 정책마저 매우 제한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이 같은 특징은 여성 유급휴가 정책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가족정책은 기본적으로 부모, 특히 엄마의 돌봄 활동 참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돌봄 활동 참여가 강제되다시피 하는 여성의 유급휴가 제도는 상당히 불합리하게 적용돼 있다. 전문가들은 “‘기간’은 상대적으로 충분하지만 지급되는 ‘급여’는 불충분한 실정”이라며 “이 같은 여성 유급휴가 정책은 여성의 취업 의욕을 저하시키고 여타 가족 구성원의 돌봄 역할에 광범위하게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조장했다”고 지적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청년 실업과 저출산의 ‘쳇바퀴’

청년 실업이 출산율 저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근 세계는 청년 실업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페인에는 ‘니니세대’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부도 일도 안 하는(Ni estudia, ni trabaja)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워낙 실업률이 높아 취업은 애초에 포기하고 대학 교육도 생략해 버린 청춘의 초상이다. 이탈리아의 밤보쵸니(bamboccioni) 역시 마찬가지다. 밤보쵸니는 ‘큰 아기’라는 뜻으로, 경제적 능력이 없어 부모에게 얹혀사는 청년들을 일컫는다. ‘부모의 은퇴자금을 축내는 자녀들(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이라는 말의 약자인 영국의 키퍼스(KIPPERS) 세대도 비슷한 상황에서 나온 용어다.

이 같은 신조어는 청년들의 실업 문제가 세계적으로 만연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청년 실업 문제는 단순히 고용 문제를 넘어 한 세대가 통째로 상대적 빈곤을 겪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고용 위축기에 사회 진입에 실패한 특정 세대가 공동으로 무기력과 허무함을 호소하고 남은 생애에 대한 희망마저 포기하면서 나타나는 집단 현상이다.

스페인 노동부에 따르면 매년 10개 이상의 단기간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은 2012년 15만 명에서 2016년 27만 명으로 급증했으며, 이탈리아엔 15세~24세 인구 중 학교도 다니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취업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족 비중이 19.9%까지 올랐다. 제대로 된 취업을 하지 못하니 청년들은 돈이 없고, 돈이 없는 청년들은 결혼, 특히 출산의 경험을 극도로 기피하게 됐다. 이탈리아의 경우 30세 미만 청년의 소득이 은퇴 연령대인 60세 이상 연령층 소득의 60%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결혼 및 출산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이탈리아는 기존 정책을 체계화하는 한편 아동수당 및 육아휴직 규정 등의 정책 적용 대상을 비전형 근로자와 자영업자로 확대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로운 정책이 등장하긴 했으나 현재로서는 해당 정책들이 일관성이 있거나 이전 정책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 정책 및 출산 가정을 위한 지원 정책의 경우 사실상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기존 규정의 파편화 문제도 부분적인 해결에서 그쳤을 뿐 실질적인 해결까진 이루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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