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 불과 한 달 사이 금융당국 입장 바뀐 이유는

내년 6월까지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시장 전 종목에 신규 공매도 진입 막힌다
공매도 비중 높은 외국인 투자자들, 다른 국가로 자금 옮길 가능성 커져
'포퓰리즘' 아니냐는 지적까지 잇따르는 상황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이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 및 제도개선’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금융당국은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점과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을 해당 조치의 배경으로 들었다.

그러나 금융업계에선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긴축 통화 기조가 완화되면서 최근 국내 증시 분위기가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이같은 갑작스런 조처는 거시 경제 변수를 깡그리 무시한 움직임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공매도 비중이 상당히 높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 행렬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공매도 전면 금지 배경

지난 5일 금융위원회는 “6일부터 내년 6월 28일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 따라 기존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었던 코스피200, 코스닥150지수 등 총 350개 구성 종목을 포함해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시장까지 전 종목의 신규 공매도 진입이 막힌다. 또한 공매도 투자자는 기존 보유한 공매도 포지션의 청산만 가능하다.

다만 과거 공매도 전면 금지 때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의 원활한 금융 거래를 위한 시장조성자 와 유동성공급자 등의 차입 공매도는 허용될 예정이다. 공매도 금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 사태 등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한시적으로 시행됐으며 이번이 네 번째다.

이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크게 출렁이고 있는 증시와 관행화한 불법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시장의 안정과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기관과 개인 투자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선 정치적 이슈로 해석

금융당국의 급작스러운 공매도 전면 조치 금지에 대한 증권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금융당국은 공매도 한시적 전면 금지의 명분으로 ‘시장 신뢰 회복’을 내세웠으나, 업계에선 총선을 앞둔 여권의 압박에 금융당국이 결국 굴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긴축 종료를 앞두고 시장 분위기가 활기찬 데다, 공매도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증시 폭락기가 아님에도 금지 조치를 시행할 이유에 대해선 ‘포퓰리즘’ 이외 딱히 다른 변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번 김 위원장의 조치는 과거 공매도에 취했던 입장과는 사뭇 상반된다. 지난달 11일 김 위원장은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담보 비율을 일원화하는 곳은 국제적으로 찾아볼 수 없고, 현실적으로도 일원화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또한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서도 김 위원장은 되레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을 불러올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번 공매도 한시적 금지 조치는 우리 증시의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MSCI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가 만들어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로, 미국계 펀드의 95%가 MSCI를 투자 지표로 삼을 정도로 투자시장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통상 MSCI 지수에 편입되면 글로벌 펀드가 이들 종목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매수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가능성도 커진다. 이는 코스피200지수에 특정 종목이 편입되면 코스피 관련 ETF가 해당 종목을 추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간 정부는 국내 증시의 MSCI 편입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추진해 왔으나, 우리 증시가 공매도를 과격하게 규제한다는 이유로 인해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공매도 전면 중단은 결국 해당 지수 편입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앞서 살펴본 대로 공매도 전면 금지의 근거로 ‘최근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는데, 이 또한 학계에서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학계에서는 오히려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지난 8월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공매도 규제효과분석’에 따르면 공매도 거래 비중 상위 20% 종목의 가격 변동성은 2020년 공매도 금지 이후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적정 수준에 얼마나 가까운지 나타내는 가격 효율성도 악화됐다.

외국인 자금이탈 우려도↑

일각에선 공매도를 금지한 금융당국의 태도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시장 신뢰도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우리나라 증시의 경우 올해 들어 외국인의 공매도 거래액이 100조원을 넘어선 데다, 6일 기준 전체 공매도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육박한다. 이런 가운데 행해진 공매도 금지 조처는 결국 공매도를 하지 못하게 된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우리 증시에 더 이상 투자할 유인을 찾지 못하고 뭉칫돈을 대거 빼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각기 투자 전략에 따라서 매수 포지션에 상응하는 만큼의 공매도 포지션을 헷지(hedge·위험분산)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지난 3일 공매도 거래금액을 보면 외국인은 3,710억원, 기관은 1,148억원이었다. 이 중 국내 기관은 정해진 자산 배분 비율이 있기 때문에 공매도 금지에 따라 국내 주식 비중을 현저히 줄일 수 없으나,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공매도 규제가 덜한 국가로 빠져나갈 유인이 크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관계자 A씨는 “외국인들은 여러 변수를 종합해 신흥국 중 한국을 투자 대상으로 택한다”며 “한국 증시가 다른 국가에 비해 특별히 매력적이지 않은 이상, 헷지 거래가 불가능한 국가에 굳이 많은 자금을 투자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금융위 조치의 배경과 관련한 논란을 떠나, 공매도 금지가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 금리를 동결하면서 실질금리,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최근 국내 증시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공매도 금지 조처가 맞물려 국내 증시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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