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콘텐츠] 국내 혹평 받은 韓콘텐츠, 해외선 호평?

글로벌화 K-콘텐츠, 퀄리티 점검 국내 혹평, 해외 호평? 기이한 평가ing 속도전 아닌 양질의 콘텐츠 생산해야 할 때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우리는 그에 맞는 퀄리티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가?”

K-콘텐츠의 글로벌화를 몸소 체험한 배우 전도연이 질문을 던졌다.

최근 K-콘텐츠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팬데믹 시기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앱은 생활 필수템이 되었고, K-좀비 붐을 일으킨 넷플릭스 <킹덤>(2019)을 시작으로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가 진행됐다. 2021년 공개된 <오징어 게임>이 누적 시청시간 16억 5,045만 시간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부문 역대 1위를 기록하며 K-콘텐츠는 넷플릭스의 성공 공식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지금 우리 학교는>(2022), <더 글로리>(2022-23)가 각각 역대 4위, 5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명실상부 글로벌 흥행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도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100>, 영화 <정이>, 시리즈 <퀸메이커><택배기사> 등이 공개와 동시에 글로벌 1위에 등극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글로벌 성과에 환호하며 순위를 강조하지만, 정작 한국 시청자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유는 찾기 쉽다. 한국 시청자와 해외 시청자의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작품들은 한국 팬들에게 혹평받았다. 감독 ‘학교 폭력’ 이슈로 꼴이 우스워진 <더 글로리>는 이슈와 별개로 국내 화제성이 더 높았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놀이를 소재로 ‘데스 게임’을 설계한 <오징어 게임>은 공개 초반 혹평을 받았다. 한국 시청자에게는 너무 익숙한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등을 활용한 게임이 B급 시리즈처럼 보였던 것. 하지만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진부한 공식이 통하며 평가는 뒤집혔다. 글로벌 시청자들은 <오징어 게임>에 몰두했고, SNS 및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한국 길거리 놀이가 콘텐츠화됐다. 더불어 세계 유수의 영화, 콘텐츠 시상식을 휩쓸며 K-콘텐츠의 기준을 바꿔놨다.

기세를 탄 K-콘텐츠는 연이어 글로벌 히트작을 탄생시켰다. 주동근 작가의 동명 웹툰 원작 <지금 우리 학교는>이 <킹덤>에 이은 K-좀비물로 사랑받았다.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등 신인 배우 떼주물로 한국 평가는 냉정했지만, 넷플릭스는 시즌2 제작을 확정하고 진행할 만큼 성과를 높이 샀다.

드라마의 연이은 성공에 이어 예능 인기작도 등장했다. MBC 시사교양부 출신 정호기PD가 기획한 <피지컬: 100>이 예능 장르로서는 최초로 글로벌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것. 피지컬 강자 100인의 리얼한 힘 대결은 문화, 언어, 배경을 뛰어넘는 날 것의 매력으로 글로벌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해외 흥행 성공으로 역량은 입증했으나, 한국에서는 ‘승부 조작’ 의혹 등으로 아름답지 못한 엔딩을 맞이하며 그 의미를 퇴색시켰다.

작품 평가의 양극화는 점점 극대화됐다. 故 강수연의 유작이자 연상호 감독 작품인 <정이>는 K-디스토피아 장르물로 기대를 모았지만, 국내 팬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연 감독표 화려한 영상미와 본격적인 SF물을 기대했으나, 어머니와 딸의 신파가 주가 되며 장르 특성을 잃게 된 것. 한국 시청자의 평가는 해외 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순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존재를 감추며 ‘인스턴트 콘텐츠’로 전락했다.

김희애, 문소리 등 베테랑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퀸메이커> 또한 정치판 여성 서사로 일말의 신선함을 남겼지만, 치밀하지 못한 구성과 전략, 얕은 서사로 혹평받았다. 배우 명성에 기댄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스토리로 ‘웰메이드 여성극’을 기대한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지난 12일 공개된 <택배기사>는 배우 김우빈과 조의석 감독과의 7년 만의 재회로 제작 당시부터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이윤균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2071년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다. 철저한 계급제로 분리된 1%의 생존자들. 그 불공평한 차별과 모순을 파헤치고 뒤집기 위해 강력한 힘을 가진 택배기사가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이 지닌 소재와 세계관은 흥미롭다. 김우빈, 강유석, 송승헌, 이솜 등이 그려낸 캐릭터는 매력적이며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구현한 특수효과도 훌륭했다. 하지만, 국내 팬들은 혹평을 보냈다. 좋은 요소들을 모아놓고도 살리지 못한 허술한 스토리와 기시감 드는 전개, 익숙한 장면들이 뻔하고 그저 그런 콘텐츠로 평가된 이유다. 6부작 시리즈를 채우기에는 에피소드가 모자랐다. 차라리 2시간 내외 영화로 압축되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OTT 관계자 A씨는 국내외 평가가 엇갈리는 현상에 대해 “국내 시청자들의 기준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영화, 최근에는 수많은 OTT 콘텐츠를 접하면서 신선하지 않은 소재와 뻔한 전개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낮은 점수를 매긴다”면서 “작품 뿐만 아니라 장르, 감독, 소재 등 여러 방면으로 마니아층이 존재해 기준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OTT 관계자 B씨는 “국내 콘텐츠의 완성도가 부족한 측면을 어느정도 인정한다”면서 “핑계는 아니지만, 국내와 해외 콘텐츠 제작 규모가 다르다. 투자 비용, 투입 인력, 전문성 등에서 차이가 있다. OTT 구독자들은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 뿐만 아니라 해외 콘텐츠를 접하기도 쉽잖나.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의 차이겠지만, K-콘텐츠가 해외 콘텐츠의 퀄리티를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혹평 받고,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는 K-콘텐츠. 이는 분명 기이한 현상이다. 관계자들은 사용자의 기준이나 규모에 따른 완성도 차이를 토로했지만, 결국 OTT 플랫폼 납품을 위해 영상화에 용이한 웹툰 원작을 선택하고, 스케줄에 쫒겨 효율성을 추구하다보니 완성도를 위한 디테일은 어느 정도 타협하는 모양새다. 현재의 상황은 K-콘텐츠의 생명력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하청기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콘텐츠시장은 ‘물 들어올 때 노를 빨리 젓자’는 기세로 달리고 있다. 속도 만큼, 이제는 퀄리티도 중요하다. 한국에 뿌리를 둔 만큼 국내 팬들을 설득하지 못한 K-콘텐츠는 해외 시장에서도 큰 주목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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