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만 보다 끝난 연금특위, ‘연금개혁’ 또 무산되나

연금개혁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사항 모두 언급 없어 ‘군인, 사학, 퇴직, 기초연금’ 등에 대한 결론 없이 연금 가입연령 상향만 공감대 공 넘겨받은 보건복지부, 구체적인 개혁안 관련해선 말 아끼는 중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지난 4개월간 국민연금개혁을 위한 민간자문위원회(자문위)를 가동했지만 특별한 결론을 짓지 못하고 논란만 남긴 채 결국 보건복지부로 공을 넘겼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뜻 정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할 때 사실상 연금개혁이 무산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금특위 사실상 빈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연금특위는 인구구조 고령화에 따라 고갈 위기에 빠진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해 지난 넉 달간 국내 연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자문위를 가동했다. 이에 자문위는 29일 연금특위에 그간 논의 결과를 담은 ‘보험료율 및 가입상한·수급개시 연령 상향’이라는 경과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보고서엔 구체적인 수치 없이 개혁의 원칙만 제시됐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이번에도 ‘생색내기 전문가들’이란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자문위는 각 전문가의 입장차로 인해 연금 가입연령과 수급연령 상향에 대한 공감대를 제외하곤 사실상 어떠한 결론도 도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62세인 수급개시 연령의 상향에 대해서 고령화의 진전에 따른 연금재정 부담의 완화 차원에서 장기적인 필요성은 인정된다”며 “현행 59세인 국민연금 가입상한 연령 또한 제도 합리화 차원에서 그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는 양측이 공감했지만, 연금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에 대해선 의견차가 분명했다.

특히 소득대체율에 관해선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이를 올려야한다는 주장과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예정대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날 김연명 공동위원장은 “소득대체율을 같이 올릴지 현행대로 유지할지 굉장히 의견이 엇갈렸고 합의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입장차는 우리나라 소득 보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문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기초연금 40만원’ 공약을 비롯해 공적연금이나 퇴직연금 개편에 대해서도 결론짓지 못했다.

공 넘겨받은 보건복지부

연금특위의 활동 시한이 다음 달 말로 예정돼 있음에 따라 사실상 개혁 논의가 국회에서 정부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현재 복지부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대해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친 후 올 10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계산위원회 등 전문위원회 차원에서 국민연금재정목표, 소득대체율·보험료율·사각지대 축소방안 등을 고려해 개혁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국회 연금특위가 목표로 삼았던 모수개혁보다 더 구조적인 차원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복지부는 그간 국민연금법에 따라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수립을 준비해왔지만, 구체적인 개혁방안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연금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으로 인해 정치권에 후폭풍이 몰아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치적 논란 속에서 개혁 추진은 요원해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다.

연금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

연금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는 애초부터 잘못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한 거시경제학자는 한국에서 가장 실패한 거시경제정책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경제전문가가 현재 세대부터는 돌려받지 못하는 돈을 연금공단에 지불해야 하는 정책의 기형적 구조를 두고, 사실상 국가 주도의 ‘다단계 금융사기(Ponzi scheme)’라고 지적해왔다.

연금 고갈 시기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사학연금 일부 개정을 제외하곤 대대적인 개정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한국납세자연맹은 10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이번 윤석열 정부도 3대 개혁 가운데 하나로 연금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부정적 의견이 팽배하다.

일찍이 사회보장금 고갈로 고통받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언론들의 폭로에 따르면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이미 2010년부터 적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재무부가 사회보장국의 복지자금을 채우기 위해 매년 채권을 발행하며 부채를 쌓은 탓에, 이러한 부담이 다시 국민에게 옮겨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비춰볼 때 더 늦기 전에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급진적이지 않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가 만드는 희생자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정부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