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예산 올해도 ‘증액’, R&D 예산은 재정건전성 위한 ‘희생양’?

창업지원 나선 정부, 팁스(TIPS) 예산도 대폭 증액
비효율적 예산 책정 언제까지? R&D 예산 삭감 의미 퇴색 가능성
"중장기적 창업환경 조성 필요, 단순 증액으론 문제 해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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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일 세종 중기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올해 총 3조7,121억원 규모의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유망한 창업가들을 지원한다. 민·관이 공동으로 유망 창업기업을 발굴하는 팁스(TIPS) 프로그램은 4,715억원, 시스템반도체나 바이오·헬스 등 10대 신산업 기업을 지원하는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는 1,031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이외에 창업기업의 해외진출과 해외인재의 국내 창업 활성화 지원, 재도전 관련 예산도 대폭 확대했다.

벤처 예산 확대, 벤처 생태계 회복 나선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일 ‘2024년 중앙부처 및 지자체 창업지원사업 통합공고’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총액은 지난해 3조6,668억원 대비 453억원(1.2%) 늘어난 규모로 2년 연속 역대 최대 액수다. 지원 분야는 △융자·보증 △사업화 △R&D(연구개발) △글로벌 진출 등 8개 유형이며, 융자·보증 분야에 대한 지원이 총 2조546억원으로 전체의 55.3%다. 단일 사업으로는 팁스 예산이 가장 많이 늘었다. 팁스는 민간이 혁신 창업기업을 투자하면 정부가 R&D, 사업화 자금 등을 연계 지원하는 방식인데, 지난해 1,591개 기업 대상 3,782억원을 지원에서 올해 1,925개사 4,715억원까지 확대됐다. 총 지원 규모가 약 24.6% 증가한 셈이다.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 예산 1,031억원은 505개사에 나눠 투입되며, 창업기업의 글로벌 협업을 지원하는 사업은 290개사에 430억원을 투입한다. 창업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K-스타트업 센터 사업도 140개사 대상 154억4,000만원이 편성됐다. 이외 글로벌창업사관학교에서 60명을 키우는 데 138억원, 해외실증 등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99억원(140개사)이 각각 배정됐다. 해외 성과 창출이 기대되는 ICT 혁신기술 기업을 돕는 K-Global 해외 진출 지원사업에 57억6,000만원(150개사), 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사업에 74억9,000만원(30개사)이 편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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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dobe Stock

규모 증액에 매몰된 정부, 예산 효율성은 어디로?

올해 예정된 창업지원사업은 총 397개에 달한다. 특히 중앙부처 중엔 중소벤처기업부가 2조원이 넘는 융자를 포함해 37개 사업에 3조4,038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지자체 중에선 서울시가 385억원을 투입해 전체 지자체 지원액 1,500억원의 25.5%를 담당했다. 대규모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벤처 업계의 숨통을 틔우고 벤처 생태계를 회복하겠단 취지지만,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예산 효율화를 위해 R&D 사업 예산도 대폭 삭감한 상황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벤처 예산만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한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된 사태는 이미 이전에 가시화된 바 있다. 지난 2021년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은 “정부 지원을 받아 설립된 지 5년 이상 지난 청년창업기업 3곳 중 2곳이 ‘매출 0원’ 업체였다”고 밝혔다. 의원실에 따르면 5년 이상 된 사관학교 1기(2011년)부터 6기(2016년)까지 총 1,515곳의 업체 가운데 1,027곳(67.7%)의 매출이 0원이었다. 사업 실패로 폐업 상태이거나 명목상 법인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고용 상황도 열악했다. 1~6기 중 5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업체가 873곳(57.6%)에 달했다. 고용인원 10명 미만도 496곳(32.7%)이었으며, 10명 이상의 두 자릿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곳은 146곳(9.6%)에 불과했다.

이에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창업 성공률이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적 창업환경 조성보다는 당장의 성과로 홍보할 수 있는 현금 지원 정책 등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작금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창업환경에 대한 개선 없이 현금 지원 규모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지원’에만 집중된 정책적 한계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초기 현금 지원은 청년 창업가들의 초기 문턱을 낮추는데 효과적이긴 하나, 더 중요한 건 7~10년 이상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전략적 접근과 창업환경”이라며 “중장기 생존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추는 ‘가시 못 규제’ 완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벤처 예산의 효율적 분배를 이루지 못하다면 R&D 예산 대폭 삭감이란 정부의 자구책에 당위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예산의 절대 규모 증액에 매몰된 행태를 타파하고 적절한 사후관리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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