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개표에 부정선거 음모론 확산, ‘전수 수개표’가 해답 될까

내년 총선부터 수개표 확인, "소모적 논란 일단락할 것"
부정선거 홍역 치르는 세르비아, 韓도 '위험'
사전투표 관리 부실 여전히 '불안', "역량 결집해야 할 시점"

내년 4월 제22대 총선부터 투표용지 개표 과정에 전수 수개표 방식을 도입한다. 전자개표 후 사람이 투표용지를 전부 확인하는 전수 검사를 추가하겠단 것이다. 선거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해킹 우려와 부정선거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다만 아직 사전투표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은 만큼 사전투표 관리 역량을 우선적으로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 총선 ‘전수 수개표 방침’ 설정

25일 정부 및 여당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전수 수개표 방침을 정하고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기관 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선관위는 수개표 과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선거 절차 개선 방안을 확정해 이르면 연내, 늦어도 다음 달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1차로 자동개표기에서 분류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개표 사무원이 일일이 눈으로 다시 확인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 결과 발표가 늦어질 수 있지만 국민의 요구가 커지고 있어 수개표를 도입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투·개표 과정에서 투표함과 투표용지에 대한 접근 권한을 원칙적으로 공무원에게만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선 총 32만6,000명이 투표 및 개표 사무원으로 일했는데, 이 중 약 40%는 민간에서 자원한 인원이었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지방공무원의 참여 비중을 대폭 늘려 원칙적으로 공무원 외에는 투표용지를 만지지 못하게 한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공무원이 얼마나 추가로 필요한지 추산해 보고 있다”며 “지방공무원만으로 전체 선거관리를 할 수는 없지만 투표용지 관리는 전적으로 맡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외 투표용지 이송 전 과정에 경찰이 반드시 입회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된다. 지금은 관외에서 사전 투표한 용지를 우체국 등기우편으로 관할 투표소까지 보낼 때 우체국 안에 경찰이 들어가지 않는데, 앞으로는 경찰이 우체국 안에서 투표용지 이동을 확인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부정선거 시비 ‘원천 차단’한다

이처럼 정부가 총선의 개표 과정을 바꾸기로 한 건 부정선거 시비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원천 차단하겠단 취지다. 앞서 4년 전 21대 총선 직후 사회적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급속하게 확산된 바 있다. 지난해 20대 대선과 8차 지방선거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음모론’이 더욱 확산할 수 있단 우려가 커졌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지난 7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해킹 가능성까지 포함해 선거 관리 전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산망 마비가 해킹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보다는 그만큼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 현실을 언급한 것이다.

앞으로 부정선거 의혹 등 소모적 논란이 이어진다면 사회적 손해가 점차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총선과 관련해 제기된 선거소송은 총 126건이었다. 이들 소송은 기각 95건, 각하 8건, 일부 각하·기각 2건, 소장 각하 7건, 소 취하 14건으로 종결됐지만,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소모된 사회적 자원은 일절 돌아오지 않았다. 선관위 또한 이와 관련해 “선거불신을 조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해 민주주의 제도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간 제기된 의혹에 대한 정확한 설명자료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및 유튜브 채널에 게시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이상의 소모적인 의혹 제기가 없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상황을 살펴봐도 부정선거 의혹은 단순히 한 번 짚고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지난 24일(현지 시각) 세르비아에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다름 아닌 부정선거 의혹 때문이었다. 앞서 지난 17일 실시된 세르비아 조기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세르비아진보당이 46.72%를 득표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는데, 선거 과정에서 각종 부정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야당 연합인 ‘폭력에 반대하는 세르비아’ 등은 집권당이 표를 매수하고 미등록 유권자를 투표에 참여시키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유럽안보협력기구가 참여하는 국제선거감시단 또한 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세르비아 총선을 살핀 결과 투표 매수 등 일련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스케일의 의혹이 터진 바는 없지만, 사전 대비책은 다다익선이다.

투표용지
제20대 대선 당시 쓰레기 봉투, 쇼핑백 등에 투표용지가 담긴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에펨코리아) 캡처

여전히 불안한 ‘사전투표’, 관리 역량 제고해야

다만 아직 불안 요소는 남아 있는데, 바로 사전투표다. 앞서 지난 대선 당시 선관위는 사전투표 관리 부실 의혹에 한 차례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사전투표 당시 선관위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선거사무원들이 받아 떨어져 있는 투표함에 대신 넣게끔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를 미리 전해 듣지 못한 유권자들이 항의하는 등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비닐봉지, 쇼핑백, 바구니 등 투표소마다 투표용지를 제각각 담는 등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소쿠리 투표’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또 투표소마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몸이 안 좋은 확진자들은 강풍이 부는 차가운 날씨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투표 마감은 4시간이나 지연됐다.

당시 선관위 측은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한 투표소에서 두 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기에 확진·격리자를 위한 투표함을 따로 비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규정을 따르더라도 사전에 언론 등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투표 방법을 소상히 알리고 투표소마다 안내요원을 충분히 배치했다면 혼란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사전투표에서 투표관리관이 날인하지 않은 점도 논란 대상이다. 공직선거법 158조 3항은 사전투표관리관이 ‘도장을 찍은 후 교부한다’고 정했는데, 사전투표 과정에서 이를 인쇄로 갈음한 경우가 있었다. 투표관리관의 날인 여부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빠른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정부와 선관위는 현재 수개표 과정 추가, 공무원 참여 비중 상향, 경찰 입회 강화 등에 대해선 거의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투표용지 왼쪽 하단에 투표관리관이 꼭 날인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추후 협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사회적 논란이 계속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기 위해 현장에서 날인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선관위는 “특정 시간대에 사람이 몰리는 사전투표 특성상 대기 줄이 길어질 수 있고, 투표 지연에 따른 민원과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투표를 어렵지 않게 해서 투표율을 올리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투표의 용이성 제고와 사회 혼란 방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이를 길게 고민하는 이는 없다시피 할 것이다. 일부 사안을 두고 줄다리기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여전히 잔존한 혼란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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