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IB 불법 공매도에 ‘속수무책’, 현장 역량 부족·처벌 수위 저열의 ‘이중고’

홍콩·싱가포르 현지 사무소 없는 금감원, "현장 협업 뒤처질 수밖에"
국내 증권사 책임성 강화 나선 금융당국, 제재 기준도 '확립'
처벌 수위는 '글쎄', "해외 사례 참조해 대처 방안 살펴야"
이복현_금융감독원_파이낸셜_20231228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모습/사진=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이 올해 들어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 공매도 단속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불법 행위 단속을 강화함으로써 선순환 경제를 만들겠단 취지지만, 정작 홍콩·싱가포르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를 주로 하는 글로벌 IB 소재지에는 금감원이 현지 사무소를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우려가 커진다. 현지 감독당국과의 협업과 정보 수집 등 현장성이 중요한 주요 업무 여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외 IB 공매도 단속 절실한데, “금감원 현장 조직 부족해”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내달 초 정기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지난달 조직개편과 부서장 인사 후 팀장급 이하 직원을 배치하는 인사다. 인사 대상 직원 중 영어에 능통하거나 공매도 조사 경력이 있는 인력들은 지난달 초 신설된 공매도특별조사단으로 배치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공매도특별조사단을 활용해 내년 1분기부터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 싱가포르 통화감독청(MAS) 등 해외 감독당국과 불법 공매도 공조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내년 상반기 중엔 홍콩·싱가포르 등지의 외국계 IB를 대상으로 현지에서 공매도 규제 간담회도 가질 예정이다. 이 같은 해외 현장 업무에 대해 금감원이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은 사실상 공매도특별조사단뿐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조직이 국내에서 진행 중인 공매도 거래 전수 특별조사와 정보 수집·분석을 벌이는 한편 새롭게 추가되는 해외 공조·협의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감원의 감시 역량이 다소 뒤처질 수밖에 없는 건, 금감원이 홍콩과 싱가포르 등에 해외 사무소를 두고 있지 않은 탓이다. 이달 기준 금감원이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는 지역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독일 프랑크푸르트, 베트남 하노이 등 여섯 곳에 그친다. 이 명단에서 글로벌 IB와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등이 아시아 일대에서 ‘본진’ 격으로 삼고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없다. 홍콩사무소는 있었지만 지난 2019년 5월께 폐쇄했다. 감사원이 금감원 조직이 비대하다며 해외 사무소를 줄이라고 지적한 영향이다. 당시 추진 중이었던 싱가포르 사무소 개설도 같은 이유로 백지화됐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홍콩·싱가포르 등지의 금융감독 관련 사안을 중국 베이징 사무소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에 기반한 조사만으론 한계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불법 공매도는 대부분 국내에 근거지를 두지 않은 해외 IB와 자산운용사 등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금융위가 부과한 무차입 공매도 과태료·과징금 중 92%는 외국계 회사에 부과됐다. 금감원이 지난 10월 최초로 적발한 관행적·고의적 불법 공매도도 국내가 아니라 홍콩에 있는 IB들의 사례다. BNP파리바 홍콩법인이 국내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규모 무차입 공매도를, HSBC 홍콩법인이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가 발각됐다. 이와 관련해 한 증권가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들은 금감원 등 국내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직접 감독·지침을 받는 반면 외국에 소재한 금융사 등은 상대적으로 국내 당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며 “이 때문에 해외 IB 등은 불법 공매도를 두고 상세한 규정을 미처 알지 못했다거나 조직 관리 중 실수가 일어났다는 등의 명목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홍콩·싱가포르 등 국외에서 이뤄진 거래 행위라도 그 효과가 국내에 미친 경우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처벌이 이뤄지려면 현지와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앞서 BNP파리바와 HSBC의 홍콩법인을 각각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 고발한 바 있는 김철 법무법인 이강 변호사는 “국내에서 해외 소재 법인과 임직원에 대한 수사를 하려면 해당 국가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해야 한다”며 “문제가 되는 불법 공매도는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형사 사법 공조 없이 불법 공매도를 처벌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 사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BNP파리바_금융위원회_20231228
BNP파리바 혐의 내용 개요/출처=금융위원회

“국내 기업 처벌도 명확히 해야”

해외 IB의 불법 공매도에 가담한 국내 기업에 대한 법적 처벌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점차 국내 기업 처벌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BNP파리바 홍콩법인, 홍콩HSBC 등 글로벌 IB 두 곳과 BNP파리바의 계열사인 서울 소재 BNP파리바증권에 대해 총 265억여원의 과징금을 매기기로 의결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BNP파리바증권에 대한 과징금이다. 불법 공매도 주문을 넣은 글로벌 IB뿐 아니라 BNP파리바의 주문을 받은 수탁 증권사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매긴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수탁 증권사는 주문이 들어오면 이 주문이 공매도인지, 공매도라면 차입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주문사의 공매도 포지션과 대차 내역을 매일 공유받고 결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잔고 부족이 지속 발생했는데도 원인 파악과 예방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가 공매도 차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사실로 제재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시스템상 증권사가 차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결제일(T+2일) 전까지만 주식을 빌려와 채워 넣는 식의 무차입 공매도가 충분히 가능한 구조다. 국내에서는 무차입으로 매도 주문을 넣는 것부터가 불법이지만, 결제불이행이 터지지 않으면 증권사의 보고 없이 감독당국이 알기 어려운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글로벌 IB 2곳의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도 금감원이 거래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전까지 관행적으로 지속됐다. 앞으로는 이번 제재를 시작으로 감독당국의 수탁 증권사 점검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처벌 수위에 대해선 부족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국내 A 증권사가 외국 법인이 낸 불법 공매도 주문을 확인하지 않은 혐의에 대해 금감원은 무차입 공매도 주문자인 ZSP인터내셔널에 과징금 120만원, A 증권사에 250만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조치안을 올린 바 있다. 지나치게 솜방망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해외 국가들은 공매도를 허용하면서도 별도 규정을 강화해 불법 공매도에 대해 엄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공매도 담보 비율이 150%로, 기관과 외국인, 개인이 동일하다. 처벌도 강력하다. 미국은 무차입이나 결제 불이행에 대해 500만 달러(약 65억원) 이하의 벌금 또는 20년 이하의 징역을 적용하며, 벌금은 부당 이득의 10배로 메긴다. 프랑스는 무차입 공매에 대해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을 내리고 있으며, 1억 유로(약 1,428억원) 혹은 이득의 10배(법인 기준)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공매도 규정 위반 시 각각 50만 유로, 200만 유로(약 28억원)씩 벌금을 책정하고, 영국은 아예 벌금에 상한이 없다.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처 방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