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권등기명령 급증 ‘서울은 6배, 대구는 9배’, 전세 제도 근간 흔들리나

9월까지 전국 임차권등기 3만7,684건, 전년 대비 430% 수준
전세 사기 급증-주임법 시행규칙 개정에 임차인들 '주목'
보다 막강한 권한 '전세권' 향한 임차인·임대인의 동상이몽
출처=집토스

전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 사기의 여파가 심각한 가운데 임차권등기명령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지난해보다 6배 넘게 증가한 수준을 보였으며, 대구는 무려 9배 증가를 기록했다.

최근 불거진 수원과 대전 등 전세 사기 사건들이 대거 임차권등기 수순을 밟고 있어 올해 남은 하반기 임차권등기명령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배 이상 급증한 전국 임차권등기, 증가 폭 더 커질 수도

20일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가 2020년 7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임차권설정등기(임차권등기명령) 신청 부동산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국의 법원 임차권등기명령 건수는 지난해 7월 1,059건을 돌파했고, 올해 7월에는 6,165건으로 48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사 결과는 임차인의 임차권설정등기 신청 후 등기를 완료한 건들만 취합한 수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2022년 7월→2023년 7월) △서울 277건→2,016건 △부산 42건→ 281건 △대구 16건→147건 △인천 277건→1234건 △광주 12건→80건 △대전 30건→188건 △울산 5건→49건 △세종 1건→39건 △경기 239건→1570건 등이다. 서울은 지난해보다 600% 이상 증가한 수준을 보였고, 대구는 발생 건수 자체는 여섯 번째에 해당했지만 증가 폭으로는 가장 큰 900%가량에 달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 임차권등기 현황은 총 3만7,68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755건)과 비교해 430% 수준을 보였다. 2021년도 같은 기간 수치가 7,970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까지 비교적 평이한 흐름을 보이던 임차권등기명령 건수가 올해 상반기에 폭증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진태인 집토스 중개사업팀장은 “최근 전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전세 사기와 임대인 파산으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를 들여 보증금을 반환하겠다고 말하며 보증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임대차 계약의 만기가 지났다면 해당 주택 소재지 관할법원에 임차권등기를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요 시간 줄이자 폭증한 신청 건수

임차권등기명령이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법원을 통해 해당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대항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임차인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사를 나가는 등 해당 물건에 대한 점유를 잃더라도 제3자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임차권등기명령은 비용이 저렴하고 소요 기간도 짧아 소송보다 자주 활용된다. 과거에는 임대인의 연락 두절이나 소재지 불명 등을 이유로 처리가 미뤄지는 사례가 빈번했지만, 올해 7월부터는 개정「주택임대차보호법」의 시행으로 신청부터 등기 완료까지 통상 3주 안팎의 시간이면 충분해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개정 전 시행규칙에서는 법원의 결정이 임대인에게 송달된 후에 임차권등기를 완료할 수 있었던 만큼, 이를 악용하는 사례를 없애겠다는 입법 기관의 의지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셈이다.

부동산 시장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전세 시장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등 여전히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사례는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전세 수요가 꾸준히 받쳐주지 않는다면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권설정 가능한 매물 찾는 임차인들

임차권은 부동산을 인도받음으로써 등기 없이도 해당 물건의 사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채권’이라는 점에서 등기를 해야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물권인 전세권과 구분된다. 다만 임차권과 임차권등기는 계약 기간 내에 유효한 권리와 계약기간 종료 후에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띤다.

임차인을 기준으로 예를 들면 임차권은 계약기간 내에 임차료를 지불하는 ‘의무’와 물건의 사용 ‘권한’을 동시에 가지는데, 계약기간이 종료하면 이는 보증금을 반환받을 ‘권한’과 물건을 반환할 ‘의무’로 바뀐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면 해당 물건을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대항할 수 있지만, 다른 집으로 이사해야 할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물건을 반환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부동산 채권의 가장 큰 특징은 점유를 상실하면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가 이사를 오면 기존 임차인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도 대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임차권등기명령 건수의 급증은 머지않아 전세권 등기 급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차권등기는 계약기간의 종료와 보증금 미반환이라는 일종의 ‘사고’가 터진 후에야 이용이 가능한데, 이같은 사례가 늘어날수록 임차인들은 계약 시점에 등기해 안정적인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전세권을 찾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세권의 경우 계약 시점에 등기하면 추후 점유를 잃더라도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보증금 미반환 시 강제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전세권 설정을 환영하는 임대인은 드물다. 계약 시점부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생각이 아니더라도 일단 전세권 등기를 완료하면 보증금 액수만큼 해당 부동산의 가치가 훼손되는 효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동산 대출을 이용할 때도 담보 가치가 하락하며, 다음 임차인을 찾을 때도 그들의 기피 대상이 된다. 부동산의 가장 본질적 권한인 소유권을 가지고도 불안정한 위치에 내몰리는 것이다. 결국 대규모 전세 사기의 여파와 당국의 관리 실패가 전세 제도 자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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