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잡기 위해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 부활시킨 정부, 실효성에 대해선 전문가들 ‘갸우뚱’

윤 정부, 사실상 11년 만에 MB식 물가 안정 정책 부활
7개 품목 비중의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차지하는 비중 3% 안 돼
이보다는 근본적인 통화 긴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 제기

물가 인상률이 당초 정부 예상을 웃돌자, 정부는 생활 물가 안정을 특별 관리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를 사실상 11년 만에 부활시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당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선 대부분 의문을 표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이번 지정한 7개 관리 품목의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도 채 안 되는 데다, 이같은 정부의 외압적 물가 안정은 되레 기업이 추후 한꺼번에 물가를 끌어올리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보다는 중앙은행이 어느 정도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고 금리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통화주의자들의 조언이다.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 재도입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가 과자·라면·설탕·아이스크림·우유·커피·빵 등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은 7개 품목 물가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고 5일 밝혔다. 지난 2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범부처 특별 물가안정 체계를 즉시 가동하겠다”며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 책임관’이 돼 소관 품목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고 공식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농식품부는 7개 품목별 담당자를 각각 지정해 개별 품목을 전담해 관리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연속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기준)이 석 달 연속 상승하자 국민들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정부는 ‘추석 효과’로 인해 물가가 8~9월 소폭 오른 뒤 10월부터는 3% 초반대로 다시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급등과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영향으로 10월 물가상승률은 3.8%로 치솟았다.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상황과 매우 닮아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2008년 4.7%)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담을 안고 갔다. 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1월 국무회의에서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담당 공무원이 품목별 물가 관리의 목표를 정해 서민 경제를 안정시키도록 하는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 도입을 주문했다. 실제 당시 농식품부의 관련 실장들은 각 농산물 물가 관리를 도맡았고, 지식경제부는 알뜰주유소를 밀착 관리하는 등 전방위적인 물가 억제에 집중했다.

해당 정책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

당시 이명박 정부의 노력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 추이를 살펴보면 2012년 1월 3.3%로 완화되기 시작해 2월 3%, 3월 2.7%로 떨어진 뒤 총선이 열린 4월엔 2.6%를 기록했으며, 이후에도 1~2%대 저물가 기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 정책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당시 거시 경제적 상황과 잘 맞아떨어져서 ‘운 좋게’ 인플레이션이 잡힌 것이라고 평가한다. 즉 이명박 정권 집권 초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물가도 자연스럽게 하락세를 보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2012년 3월부터 대폭 확대된 무상보육·급식 영향으로 보육료·교육비가 대폭 줄어든 데다, 한동안 물가상승률을 견인하던 ‘금반지’가 통계청의 품목 조정으로 인해 빠진 점 등이 부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부 조처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대부분 전문가가 고개를 내젓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를 상위 순위부터 살펴보면 ▲월세 44.3 ▲휴대 전화료 31.2 ▲공동주택관리비 21 ▲휘발유 20.8 ▲외래진료비 19.2 ▲전기료 15.5 ▲고등학생학원비 12.8 ▲구내식당 비 11.9 순이다. 그런데 정부가 집중 관리하기로 한 7개 품목이 전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즉 물가 인상의 가중치가 낮은 품목에 대해 아무리 대책을 잘 세운다고 하더라도, 서민들의 근본적인 경제적 부담을 줄이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물가 잡기는 인플레이션이 반짝 이어졌을 때 이를 정치적으로 억눌러줌으로써 단기적인 효과를 낸 것”이라며 “현재 우리 경제는 벌써 1년 반 이상 물가 상승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단순 조처로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으로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부가 누른다고 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없어지거나 인플레이션 기대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기회를 보다 한꺼번에 가격을 많이 올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고통 감내하고 금리 인상해야 물가 잡힐 것

이에 통화주의자들은 어느 정도 고통이 있더라도, 결국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와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런 주장은 1980년대 미국의 만성 인플레이션을 잡았던 폴 볼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정책 경험에 근거한다. 폴 볼커는 베트남 전쟁 및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던 1979년 취임해 8년간 연준 의장으로 재임했던 인물로, 그가 취임했던 1979년의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1.8%였다. 이 수치는 1980년 4월까지 14.5%로 치솟았다.

볼커 전 의장은 당시 취임하자마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실효 기준금리를 연 8.0%에서 17.6%로 9.6% 포인트나 끌어올렸으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12%를 웃돌았다. 이에 볼커 전 의장은 1980년 7월 연 9.03%였던 금리를 1981년 6월 연 19.1%까지 올리는 등 유례없는 고금리 긴축 정책을 펼치면서 물가를 잡고자 했다. 이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4~5년째인 1983년과 1984년에 이르러선 물가상승률이 각각 3.2%와 4.3%로 크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 심리를 꺾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기준금리를 연 8%~11% 수준으로 유지했고, 금리를 연 8% 아래로 낮추며 긴축 고삐를 늦춘 건 물가가 3%대가 안정된 1985년 5월로, 취임 후 5년 9개월 뒤였다. 이러한 볼커 전 의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물가보다도 기준금리가 낮은 현재 한국의 경제는 여전히 더욱 강도 높은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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